너희들은 점점 커갈 것이고, 부모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질 것이며, 나와 이야기를 하는 횟수도 줄어들 것이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지금은 너희가 어려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어른이 된 너희들에게 아빠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본다.
인생은 운7기3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결정짓는데 운이 기운(노력) 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데, 아빠가 보기에 지금은 운9기1 정도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해석하자면 노력이 운을 따라갈 수 없는 씁쓸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사실은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운의 영향을 받는 것이 생각보다 많단다.
노력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의 영역이고 운이라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인데... 불공평하게 말이지.
단순하게 부잣집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는가 가난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는가의 상태 뿐 아니라, 부모의 외모를 물려받고, 부모의 지능을 물려받고, 부모의 성정을 물려받고, 어떤 동네에서 살며, 같은 동네에서도 어떤 학교에 다니며, 같은 학교에서도 어떤 친구를 만나며, 또 그 친구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며 등등, 사실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냈다고 생각하는 결과나,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결과들은 노력과는 상관없이 아주 많은 수의 운이나 불운이 겹쳐 결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고운 외모와, 높은 지능을 물려받고 좋은 학군에서 좋은 친구들과 공부가 주가 된 생활을 하는 아이와 가난한 집에서 낮은 지능을 물려받고 좋지 않은 학군에서 일탈을 일삼는 친구들과 생활을 하는 아이의 노력이 동일하다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기는 아주 어렵다.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잘 되면 부모 덕, 잘 되지 않으면 아이 탓이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모의 덕분이나 아이의 탓이나 둘 다 노력의 영역에 있는 것인데...
(아빠는 잘되고 못되고의 기준부터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노력이란 것이 크게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자 함이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본인이나 타인의 삶을 노력이 부족했던 게 원인이라고 규정짓지 말고, 성공한 본인이나 타인의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본인의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라 우쭐하거나,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노력에 대해 무조건 존경받아야 할 인과성이란 것이 강하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
집안의 예를 들자면 너희들의 두 삼촌의 직업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직업 중 하나인 의사인데, 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곳을 나와서 의사가 되었단다. 그런데 이 의학전문대학원은 학비는 비싼 반면, 의대에 비하면야 상당히 들어가기 위한 난도가 낮은 수준이라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될 실력이 없어도(정확히는 대학 수학능력시험 점수), 추가적인 학비를 지출할 여력이 있는 가정에서, 대학 때 학점관리를 잘 해왔다면, 의사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 의전원은 참여정부 때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었고, 이제는 없어지는 추세이다. 아마 너희가 대학교에 갈 즈음의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이 시기의 의전원을 나와 의사가 된 의사들은... 의전원이라는 제도기 없었다면 의사는 되지 못하는 점수였으니까... 운이 좋은 사람들이지. 본인들은 온전히 노력해서 의전원에 들어가고, 의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말이다.
(의사가 의사 본인에게는, 썩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살아가는 과정에 크고 작은 많은 운이 있을 텐데, 작은 운에도 즐거워할 줄 알고, 한 사람의 운과 노력을 혼동하여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노력 부족이라느니, 열심히 했으니 보상받아야 한다느니 하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가진) 편협한 세계관을 깨고 세상을 보길 바란다.
이 운이라는 것은 한 개인 뿐이 아닌 도시나 국가단위,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지금은 유행이 한참 지났지만 너희는 아직 읽을 수 없는,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총, 균, 쇠 (재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책들이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결정하는지 생각해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운7기3이 운9기1이 된 것에는 위에서 얘기한 단편적인 예시들과는 무관한...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을 엄청나게 상회하는 다른 문제가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