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소리/미래의 아가에게

아빠의 일생 - 02. 폭력과 외로움

허리띠를졸라매자 2022. 12. 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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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 abuse by Nick Youngson CC BY-SA 3.0 Pix4free

아빠의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란다.

아빠는 이혼 가정의 자녀인데... 아빠는 친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서른 살이 넘어서야 알았단다.

아빠는 5살인가 6살까지 외할머니의 집에 얹혀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의 엄마는 다른 남자와 재혼한 후 아이를 하나 놓고는 또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외할머니의 집에는 아빠와 같은 처지인 '하나'라는 아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단다.

가끔 '하나 이모'라는 양반이 외할머니의 집으로 올 때면 지갑에 있던 현금을 다 주고 갔던 기억이 난다.

'하나 이모'는 아빠의 엄마이자 하나의 엄마였고, 아빠가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 저거란다.

 

뭐 그렇게 서울에서 태어난 아빠는 6살까지 전라도에서 키워지다가, 6살이 되어서 외갓집 쪽에서 못 키우겠으니 데려가라 해서 서울로 올라왔단다.

 

 

그렇게 올라온 서울에는 어제 돌아가신 할머니와 M자 탈모를 유전으로 아빠에게 넘겨주신 것 같은 할아버지... 그리고 친아빠와 새엄마, 친아빠와 새엄마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쌍둥이 동생이 있었단다.

 

어릴 때 아빠는 참 많이 맞고 컸는데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처음 기억나는 것은... 아빠는 선교원이라 부르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 같은 곳을 다녔는데, 그곳에 아주 어릴적 친구가 둘이 있었단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친구와 주택을 겸하는 교회의 지하방에 살던 친구. 그리고 아빠까지 셋은 아주 가까운 친구여서 매일같이 같이 놀곤 했단다.

아빠가 살던 집의 대문을 나오면 바로 윗집이 그 교회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지하에 살던 친구의 생일이었는데, 지하에 살던 친구가 셋이 조촐하게 생일 파티를 하자며 자신의 저금통을 셀프로 뜯었고, 아빠는 꽤 맞았던 기억이 있단다.

 

이후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오기 전까진 자세한 일은 기억이 이제 안 나는데, 그때도 아빠는 맞는 게 무서워... 통금시간인 5시를 넘기면 맞을까 봐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가 저녁에 아빠의 아빠가 퇴근한 것을 확인하고는 아빠가 살던 집 안의 건물과 담장 사이의 얇은 통로에서 잤던 기억이 있다. 여러 번은 아닌 거 같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아빠가 기억하는 강렬했던 인상의 일들은 이사를 오고 난 후가 많았는데, 원인을 찾아보자면 아빠가 잘못해서 맞은 경우가 많으니 너희들에게 창피한 아빠가 잘못한 부분은 넘어가고, 아빠의 기억 대부분에서는 공부를 안 한다고 맞곤 했단다.

 

 

아빠가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입학식 날 아빠를 따라오던 아이가 있었단다.

그 아이는 아빠가 맘에 들었는지... 나중에 아빠가 살던 집 우체통에 편지를 하나 써서 직접 넣어두고 갔었는데...

이 편지는 당시 우편함을 열어볼 일이 없던 아빠가 발견하지 못하고 아빠의 아빠가 발견하게 되었단다.

결국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까지 불려 들어왔고... 아빠는 그 친구의 앞에서 맞기 시작했단다.

 

아빠는 알몸으로 맞는 경우가 많았는데, 편지를 쓴 아이와 아무 상관없는 남자인 친구 앞에서... 그날도 팬티만 입고... 맞춤법도 모르는 아이랑 만나고 싶냐는 이유로 맞았단다.

덕분에 아빠 친구의 전언으로 인해 아빠의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학교에 소문이 났었었구나.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가 살던 동네에는 뒷 산이 있었는데... 자정쯤에 뒷산에 올라가 알몸으로 나무에 묶였던 기억...

 

아빠가 살던 집은 지하실이 있는 단독주택이고 그 지하실엔 곱등이들이 아주 많았는데... 조명을 끄고 지하실에 갇혔던 기억...

 

자정쯤 한강 고수부지로 가... 물에 뛰어들라고 하던 아빠의 아빠...

 

안방 한가운데 식탁의자를 하나 두고는... 아빠한테 알몸으로 무릎 끌고 올라가라고 한 후 아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너는 개새끼야'를 연달아 말하면서 맞던 기억...

 

 

또 한 번은 중학교에 아빠의 친구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하교를 하면서 아빠의 친구가 원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오늘 등교를 하지 못했다고... 아빠의 친구의 여자 친구는 대신 데려다 달라고 아빠한테 부탁을 했었단다.

그날은 드물게 아빠의 아빠가 회사에서 아주 일찍 온 날이었는데,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아빠를 데리러 왔던 아빠의 아빠는 그걸 목격하고는 아빠의 아빠의 친구의 여자 친구를 차에 태워 집으로 갔단다.

 

그리고는 아빠의 친구의 여자친구 앞에서 팬티까지 벗기고 알몸이 된 아빠를 가죽 혁대로 때리면서... 아빠 친구의 여자 친구에게 '너 때문에 얘가 맞는 것이니. 얘를 만나지 말라고.' 했단다.

아빠는... 아빠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다음 날 학교에서는 아빠의 아빠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났단다.

 

 

아빠의 잘못으로 인한 이슈들도 있었지만... 아빠가 주로 기억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잦았는데, 나중이 되니 삼일에 한 번 맞는 패턴이 파악되어... '어제 맞았으니 오늘은 안 맞는 날이구나.'라고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단다.

 

당시 아빠에게 집이란 곳은 맞는 일이 잦은 무서운 곳이라서 아빠는 집에 자주 들어가지 않게 되었단다.

 

 

아빠는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때까지 맞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아빠는 맞는 게 무서워지지 않았고, 그래서 아빠의 아빠가 아빠를 때리면 신음조차 내지 않으려 참으며 그냥 맞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아빠가 맞는 일들은 끝이 났구나.

 

이런 유년기의 아빠는 집이 무서웠으며, 심지어는 동네에서 돌아다니다 길에서 아빠의 아빠를 보면 맞는 게 두려워 반대 방향으로 뛰어 도망가는 지경이 되었단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에게 자주 말하고 중요시 여기는 점 중 하나는 '집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란다.

집이란 곳은 치유받고, 즐겁고,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는 게 아빠의 가치관 중 하나란다.

집이 무서우면 아이는 밖으로 나돌게 되는 경우가 많더구나.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나돌면서 가족에게 의지할 일도 적고 기댈 곳이라곤 아빠 본인과 친구들밖에 없던 아빠는 많이 외로웠단다.

 

 

 

그래서 아빠는 평생 외로웠단다.

 

너희들의 엄마를 만나고, 너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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